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블로 피카소 (문단 편집) === 성공 이후 === 생전부터 그림이 잘 팔렸던 화가로도 유명한데, 피카소 본인도 자신의 그림이 얼마에 팔리는지 확인했다고 한다. 자기가 받을 돈의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, 자신이 그린 그림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. [[파일:external/www.pablopicasso.org/guernica3.jpg]] [[스페인 내전]] 당시 나치 공군의 [[콘도르 군단]]은 마을에 주둔한 공화국군의 퇴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교량을 파괴하기 위해 폭격을 실시했다. 이후 일어난 먼지구름 탓에 정확한 목표 식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차별 2차 폭격을 시행했던 것. 민간인 1,500~1,600명이 사망했다. 본 작품은 이후 황폐화된 [[게르니카]]의 참극을 듣고 그린 <[[게르니카]]>이다. 이 그림은 349×775cm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작품이다. 그래서 피카소는 붓이 아니라 '''롤러'''로 그림을 그렸다. 피카소는 그 후 이런 식의 행보로 [[프란시스코 프랑코]]의 미움을 사 [[미국]]으로 망명을 갔고, 이후 전쟁이 끝나자 남유럽으로 돌아왔다가 프랑스에서 사망했다. 피카소는 >'''"[[스페인]]이 민주화되기 전에는 <[[게르니카]]>를 스페인에 걸 수 없다."''' 고 주장했다. 그래서 <게르니카>는 한동안 미국의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소장했다. 참고로 피카소가 92세까지 살았지만, 하필이면 프랑코도 천수를 누리는 바람에 [[스페인]]이 민주화되는 것을 못보고 세상을 떠났으며, 피카소 탄생 100주년이 된 1981년이 되어서야 이 걸작은 조국인 [[스페인]]으로 반환되었다. 반환 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소장했다가, 1992년부터 [[마드리드]]의 소피아 여왕 박물관(Museo Reina Sofia)에서 소장 중이다. 속설에 의하면, 나치의 [[파리(프랑스)|파리]] 점령 직후 한 [[게슈타포]] 장교가 <게르니카>를 보고 피카소에게 "당신 작품인가?"라고 묻자, 피카소는 '''"[[학살|아니, 당신들.]]"'''이라며 [[촌철살인]]격인 답변을 날렸다고 한다.[* 영어로는 "Did you do that?" / "No, you did."인데 영어에서는 do동사가 paint와 kill 같은 다른 동사를 포함할 수 있어서 가능한 상황이다.] [[파일:external/www.ericyu.ca/Guernica_Blog_Madrid-2.jpg|width=480]] 그림이 [[크고 아름다운|크고 아름답기]] 때문에, 소피아 여왕 박물관에 아예 <게르니카> 전시를 위한 방이 따로 있을 정도다. [[파일:external/cfs8.blog.daum.net/48b16ed405d23&filename=%ED%95%9C%EA%B5%AD%EC%97%90%EC%84%9C%EC%9D%98%ED%95%99%EC%82%B4.jpg]] 또한 1951년 [[6.25 전쟁]]을 모티브로 한 <한국에서의 학살>이라는 그림도 그렸다. 흔히 [[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]] 혹은 [[신천 양민 학살]]을 주제로 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. 하여간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그린, <게르니카>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반전 작품 중 하나로, 당시 '미군을 학살자로 묘사했다'는 주장도 생기는 바람에 한국에선 1980년대까지 금지 예술품이기도 했다[* 사실 한국전쟁 중에는 국군과 미군은 물론이고 인민군과 중공군, 심지어는 정치깡패인 [[서북청년단]]에 의해 벌어진 학살사건도 부지기수였다. 사실 이 작품이 금지작품이 된건 단순히 미군을 학살자로 묘사해서가 아니라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에서 좌파정부를 지지했던 것도 한 몫했다.]. 물론 '''누가 누구에게 했든 학살은 학살이다.''' 브루스 커밍스의 저서 《한국전쟁의 기원》은 그 표지에 이 그림을 쓰고 있다. [[프란시스코 고야]]의 <[[마드리드, 1808년 5월 3일]]>, [[에두아르 마네]]의 <막시밀리안의 처형>의 구도를 참고해서 그렸다고. 이걸 가지고 [[조선일보]]는 해당 그림이 6.25 전쟁의 허위 선전물이라고 주장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